일 시 : 2012 - 07 - 15 09:36 -18:05
장 소 :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 환쟁이골 상대날등 일원
누 구 랑 : 해찬솔 산악회 일원
날 씨 : 구름많고 안개 앤 비
코 스 : 운서마을 - 적조암 - 환쟁이골 - 박쥐굴 - 지장사터 - 상대날등 - 금낭굴 - 선열암 - 유슬이굴 - 선녀굴 - 의론대 - 고열암 - 신열암 - 독바위 - 안락문 - 상내봉 정상직전 좌틀 - 배틀재 - 공개바위 - 천상굴 - 운서마을 ( 약 17km)
언제나 여행이나 산을 간다는 건 설레이는 마음이다. 이번 산행도 마찬가지다 이번 산행 일정이 올라온 것을 보고 망설임 없이 신청을 하였다. 지리산의 수많은 골짜기와 능선이 있지만 그중에서 아마도 가본곳이 얼마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옛 절터를 찾아나선다는데 구미가 당기지 않으면 아마도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서 신청을 해놓고 본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장마와 더불어 찾아와 토요일 저녁 줄기차게 창문을 때리는 비 소리와 조금은 실망이다 이렇게 비가 오면 지리산 입산 통제를 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산악회의 일정을 둘러봐도 취소란 단어가 보이지 않아 의아해하면서도 아침에도 확인하고 집을 나서니 각시왈 그쪽 산악회는 이렇게 비가와도 가냐고 묻는다. ㅎㅎ
그렇게 약속장소에 도착하여 예정보다 많이 늦게 출발하지만 등산객은 많이 불참하였다. 텅빈 좌석을 보니 마음은 조금 허전하지만 그래도 내가 가 보고자 한 곳을 간다는 마음에 설레임도 있다.
차는 지리산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후 바로 지리산 나들목을 나가 오도재 갈림길에서 산청쪽으로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강물과 같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동안의 가뭄에도 이번 단비로 계곡은 그야말로 요란한 물소리에 내 마음까지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들머리를 찾지못해 두어번 헤메이다 운서마을에내리니 하늘은 낮게 내려앉은 구름으로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날씨다. 서둘러 준비하여 적조암까지 시멘트 도로를 따라 점점 더 깊이 지리산의 품으로 숨어드는 느낌이 들며 적조암에 이른다. 잠시 적조암을 둘러보고 이제 산죽비트 환쟁이골로 숨어드니 하늘은 보이지 않고 지리산의 비경과 맞닥드리며 시험지를 받아들고 처음에 어리둥절 헤메이는 것처럼 그렇게 설레임을 잠시 맛본 후 계곡의 멋에 취하며 그렇게 길을 찾아 오르다 목이버섯를 체취하기에 바쁜일행들의 모습이 오늘 산행의 의미는 뒷전이고 목이버섯 체취에 열중이다.
이제부터 지리산의 칠암자터가 주는 매력으로 들어가 보자.
이 강을 엄천강이라 해야하나,
아마도 이 강물을 따라 내리면 경호강을 만나리라.
운서 들녁이 짙은 초록입니다.
그새 벼가 자리를 잡아 튼튼하게 뿌리를 내린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꽃
왜 이리 아름답습니까
여기서 부터 산행 시작입니다
이 구간이 지리산 둘레길의 일부입니다
원추리
밤새 내린 비로
계곡이 시원합니다
적조암
적조암 담 벼락에 핀 도라지
적조암 대웅전
채송화
이놈도 비온 뒤라 그런지 동네한바퀴 마실 나왔나 봅니다.
민달팽이
환쟁이골 초입에서 잠시 후미를 기다립니다
누가 이런 운치를 만들어내겠습니까
이곳은 이제 산수국이 한창 피고 있습니다
박쥐굴
박쥐들의 단잠을 깨운것은 아닌지
환쟁이골 초입에서 직진하다 좌측 계곡을 들어서서 한참을 찾아 헤메이다 희미한 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빨치산들이 이곳에 생활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박쥐들의 천국이라 배설물 냄새로 동굴안에는 잘수가 없을 것 같고 입구에서 비박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박쥐굴 입구
이 이름을 알려 주었는데 제 머리가 이제 기억력이 가나 봅니다.
알려주세요.
비온 장마기간이라 습도가 많아서 그런지
버섯 천지더군요.
덕분에 목이 버섯을 따서 점심 라면으로 정말 맛나게 먹었습니다.
이 버섯 이름은 모르겠고 하도 크기에.....
지장사 터
박쥐굴에서 상대날등쪽으로 살짝 비껴서듯이 오르면서 찾아듭니다.
정말 사람의 흔적이 많지 않은 예전에는 어떻게 이런곳에 암자를 짓고 살았는지 의구심이 들만큼 깊은 곳입니다.
고려시대 우리나라가 얼마나 불교가 성행했는가를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지장사터는 기와조각들로 돌무더기를 쌓아 놓았기 때문에 고증을 통해서 지장사 터임을 알수가 있을 뿐인것 같습니다
단풍취
취중에서는 단풍취보다 병풍취가 더 맛나던데 맞는지 모리것습니다
금낭굴 터
지장사 절터에서 상대날등을 따라 치고 오르다 옆으로 빠져 나가면서 희미한 길을 따라 나아갑니다.
아마도 첨단 장비의 도움이 없이 지도와 나침판만 가지고 있다면 찾기가 쉽지 않을 그런 칠암자터들이었습니다.
이곳에서의 목이버섯 라면은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이 굴안 좌측 통로로 치고 바위를 오르면 상부에 또 다른 바위들이 버티고 있으며 이 곳을 장군봉이라고 합니다.
오직 자연이 흐르는 대로 원시림 그대로이기 때문에
이런 멋진 이끼들의 천국을 형성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과
자연이 그져 그대로인 자연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랑을 쟁취하려는 자와
자연 그대로를 사랑하려는 그 차이
마가목 나무
점심때 정말 감칠맛 나게 먹은 술
이 나무 열매로 술을 담는다네요
오늘 돈주고도 못할 자연공부 많이 합니다.
바위취
좀처럼 보기가 힘든 식물이라던데
맛도 좋았습니다
선열암 터
주벼에는 하루 한 끼니 분의 쌀이 나왔다는 식장산의 전설을 연상케 하는 바위굴도 있다고 합니다.
쌀바위의 전설하나만 믿고 이 골짝에 들어왔던 비결장들이 절터아래 노장동의 원주민이며 억지로 절터 벼랑 아래로 내려가 보면 기와조각과 청자 백자 파편들이 얼추 한 트럭 분량은 흩어져 있습니다.
선열암터를 찾기위하여 금낭굴에서 능선을 따라 직진을 하다 싶으게 한참을 진행한 후에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수행을 할 수 있는 바위도 있어
옛날 선승들의 모습을 잠시 엿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유슬이굴암자 터
이곳은 한때 유씨성을 가진 어느 사람의 기도 터 이어서 유슬이굴 이라고 했다는데 주변에 아주 오래된 기왓장들이 널려있음이 암자 터라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언제 적에 탄생하고 사라졌는지 절의 역사는 알길 없지만 덤불속에는 암자와 석굴을 연결해 주는 돌계단도 선명합니다.
절터의 고즈넉함과 마치 안방 같은 굴 내부의 넉넉함이 궁합을 이루어서 학승의 공부도량으로 딱 좋은 곳입니다.
유슬이굴은 솔봉능선과 문수사능선의 정 중앙에 위치한 셈입니다.
얼추 백년은 되었음직한 두릅나무 유슬이굴 바로 앞에 버티고 있습니다
선녀굴
의론대에서 인근 세 암자의 중들과 대승 소승을 논했다는 노숙 우타스님이 거처했던 곳이 이 곳 선녀굴이 아닌 가 추측을 해 봅니다.
이 암자 터는 해방직전까지만 해도 작은 암자가 있어서 스님이 가끔씩 송대리에 내려와서 소금을 얻어가고 했다고들 합니다.
선녀굴은 예쁘고 고운 이름에 걸맞지 않게 처절한 한국전쟁의 비화를 안고 있는 곳입니다.
빨치산 정순덕이 지리산에서 최후의 3인부대로 떠돌던 중 3인중의 한 사람인 이북출신의 남파 공비인 이은조(45세)가 사살된 현장입니다.
1961년 12월 어느 날 선녀굴 앞에서 아침밥을 짓고 있던 중 토벌대의 총격에 이은조가 사살이 되고 나머지 잔비 정순덕과 이홍희는 이은조의 시체를 선녀굴 삭간수 바로 앞에 대강 매장을 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2년 후 1963년 11월 정순덕이 내원골에서 체포가 되어 산청경찰서에 수감 중 이은조의 주검을 확인하는 현장검증이 이루어지던 날 이었다고 합니다.
경찰들과 수사관들이 체포당시의 총상으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절단한 정순덕을 한 촌부의 지게에 지고서 선녀굴로 향하는데지나는 마을사람들로부터 돌멩이가 날아들었다는 애기가 있기도 합니다
선녀굴 선바위에는 그 때의 총탄흔적들이 남아있어 역사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한때는 부처님의 도량이었던 작은 무명암자 터 이곳도 지리산의 여느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화는 피해갈 수 없었나 봅니다.
석간수 물맛이 참으로 좋았는데....
선바위 이곳에 총탄의 흔적이 있다고요 ㅎㅎ
자유의 소나무
의론대에서 바라본
삼봉산과 백운산 법화산 능선
의론대에서 바라본 독바위
고열암
이 곳은 김종직서생이 천왕봉 등정 길 첫날에 하룻밤을 묵은 절입니다.
의론대에서 독바위를 약2분정도 오르다 등로에서 약간 우측으로 비껴나있습니다.
신열암 터
고열암을 잠시 갔다가 되돌아 나와 독바위쪽으로 조금 좌측으로 비껴나아가면 우측으로 바위하나가 있습니다.
암자 터가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 텅 빈 이 폐허의 자리에서 그저 하룻밤 잠만 자도 도가 닦여질 것 같은 명당 터입니다.
이 곳이 신열암터라고 이름 지어진 것은 김종직의 유두류록 기록을 근거로 한 탐구에 의해서 입니다.
주춧돌과 기왓조각들만 남은 신열암 터를 지키고 있는 선바위 틈의 맛 좋은 석간수는 돌샘도 법문인양 몸집 큰 사람은 물 한모금 마시기도 어렵게 꼭꼭 숨어있습니다.
지금은 누군가가 이렇게 돌로 아주 소담하게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정말 맑고 깨끗하기 이를데 없고 물 맛 한번 좋았습니다.
함양 독바위
독바위의 전설에 의하면 한 부인이 바위사이에 독을 쌓아놓고 그 안에서 홀로 기거 도를 연마하여 하늘로 올랐다 하여 독녀암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곳 함양 휴천에서는 독아지의 장독바위, 마천에서는 붓끝의 필봉, 산청 화개에서는 상투머리의 상투바위로 각각 달리 부른다는 바위다.
독바위 정상을 오르는 밧줄
다시 좋은 줄로 설치해 놓았습니다
안락문
통락문은 오래전부터 있어온 각자이고 안락문은 근래에 누군가가 각자를 새겨서 붉은색으로 덧칠을 해 놓은게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힌 시절 지리산을 물들였던 이념의 색깔론으로 저 문을 통해 내려오면 안락해진다고 해서 유래한 것이라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통락문의 원 뜻은 ?
통락문은 세상시름 다 잊고 안락의 경지로 들어가고 통하는 문이라고 했는데 깍아지른 면벽이 너무 살벌해서 형무소의 복도 같은 느낌이 듭니다.
노루오줌
꿩의 다리
배틀재
잣나무와 전나무 숲길입니다
선청 방곡리 공개바위
경상남도 기념물 제266호 (2007.9.6)
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해발 755m의 야산에 있는 공개바위는 원래는 흙속에 묻혀 있었으나 풍화작용으로 인하여 주변의 흙이 떨어져 나가고 현재의 모습이 되엇을 것으로 추정한다. 모두 5개의 육면체 바위가 석탑 모양으로 쌓여있는데, 그 규모는 높이가 12.7m 이고 둘레가12.4m정도이다 인공적인 5층탑을 방불케하는 이 기념물은 25-30도 정도 옆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오래전부터 한국판 피사의 사탑으로 관광객들의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옛날에 지리산 마고할미가 공기놀이를 하다가 그 공깃돌 5알을 쌓아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이 공개바위라는 전설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공개는 공기의 경남서북부 방언)
세발 버섯
옛날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천상굴
지금까지 절터를 일곱 군데나 들러 보았지만 아무것도 본 것도 없는 그야말로 헛 절말 찾아다닌 칠암자 산행이었습니다.
눈으로 본 것은 절의 허상이지만 마음으로 느끼고 가슴에 담은 감동은 풍성할 것입니다.
진실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차원의 세계로 가는 길이 있다면 아마 이런 길일 것 같습니다.
사는 것이 버겁고 삶에 대한 회의가 오거든 집도절도 없는 칠암자를 한바취 둘러보세요.
절해고도와도 같은 산중에서 인고의 세월을 살다간 구도자들의 삶을 만나면서 재충전한 또 다른 당신의 모습을 발결할 것입니다. (이 글의 일부는 함양 문화원의김용규 님의 탐방기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지리산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식물들과 동물들 말고도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선물을 안기며 아직도 얼마나 더 많은 문화 유산을 안겨주게될지 궁금한 것은 사실이다.
이번 산행에서 지리산이 품은 절해고도의 산중에서도 선승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을 것이고 이 땅의 근대사의 아픔을 제일 많이 간직하면서도 산 본연의 모습을 근대사의 아픔으로 제일 많이 잃은 곳이 지리산 지금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산행에서 정말 제대로 된 길도 없는 그 비탈길을 따라 암자터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일지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찾아 나서는지 궁금했다 내 자신에게도..
하지만 한가지 확실하게 남는 것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제일 성행했던 고려시대의 절터이건 그 이후의 절터이건 절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다 대동소이하겠지만 이번 동북부 칠암자터들은 다 큰 바위를 배경삼고 산세가 험하고 깊기 때문에 물이 솟는 곳이어야하고, 음양으로 치자면 음의 기운이 더 강성한 곳에 암자들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내 나름의 추측을 해본다.
그리고 이번 산행에서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이 하나를 가지면 열을 갖고 싶고 열을 가지면 백을 갖고 싶은 그 욕심앞에 얼마나 더 욕심을 채워야하는지 그 욕심의 근심에서 내가 얼마나 더 망가져 가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지 않나 생각한다.
동북부 칠암자터의 탐방 산행기는 이것으로 마무리한다.
칠암자 터
눈앞에 펼쳐진 것이 자연이고
잡히는 것이 허공이고
들리는 것이 바람이고
보이는 자연의 색감이고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을 것이고
무엇을 흘려보낼 것인가.
삼라만상이 항상 다른 소리를 내듯
좌정하고 앉은 내 생각속엔
이미 세상의 이야기가
파노라마 처럼
지나가는 찰라일 뿐인것을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무것도 잡지 않는
시공간을 초월한 삶을 살다가 갔을까?
선승들은...
2012.07.16
대 방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