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10 - 10 - 31 10:00 - 13:45
장 소 :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안사 봉두산
누 구 랑 : 대 방 산
코 스 : 태안사주차장 - 태안사 - 성기암 - 갈림길 - 외동골갈림길 - 봉두산 - 봉두산 - 삼거리갈림길 - 태안사 - 주차장
날 씨 : 맑은 가을하늘
처음 계획은 순천만 갈대숲을 갔다가 낙안읍성의 남도음식축제를 보고 오려고하였으나, 갑자기 혼자서 태안사 봉두산을 향하여 집을 나서게 되었다. 차는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석곡 나들목을 나가 18번 국도를 따라 보성강변의 가을 아침을 달리는 기분은 시원한 가을바람과 함께 강변에서 손짓하는 은빛 물결의 출렁임을 보면서 내쳐 달려가는 것이 참 좋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압록을 조금 못미쳐 태안교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태안사 가는 호젓한 드라이버하기 참 좋은 그런길이다. 약 5킬로 들어가면 태안사입구다. 입구를 통과하고 차는 조태일시문학관 주차장에 주차하고, 준비하여 태안사의 호젓한 산길을 걸어면서 가을날의 멋진 어우러짐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가니 새삼 이런 비포장 길을 언제 걸어보았는지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공간이 흙과 자갈이 깔린 그런 정겨운 길이 어디메에 있는지 까마득하게 먼 옛날의 이야기인 것 같다.
쉬엄쉬엄 걸어올라가는데 노스님 한분 뒷짐지고 이 호젓한 산길의 주인공이 되어 무슨생각을 하면서 걷는지 그 걸음에 무게가 있다. 반갑게 인사하고 스쳐지나가니 나도 산사의 고요함에 빠져들듯 짐진 숙연해진다 한참을 걸어 오르니 더디어 태안사의 능파각이 나온다 정말 멋드러진 계곡을 건너는 쉽게 말하면다리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제 성기암을 향하여 오른다. 성기암까지는 임도가 있으나 그냥 산길을 따라 오른다.
성기암이 왜 성기암인지 그곳을 둘러보고서야 알것 같다는 생각이다. 예전에 태안사를 많이 찾았으도 이곳 성기암까지는 올라와 보지 않았다. 오늘 보니 이곳 성기암자가 남자의 낭심과 귀두처럼 생긴 바위 옆에 자리하고 있어 그런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틀리면 말고 ㅋㅋㅋㅋ
이제 봉두산을 향하여 가파르게 치고 오른다. 어느새 능선삼거리 예전에 밑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었는데 지금은 폐쇠되었다고 표시되어있다.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봉두산까지의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산죽길이 쭉 이어진 그런 길인데 쉽게 걸어갈 수 있도록 정비한 그런 길이다.
오늘은 제법 이곳 봉두산을 찾은 이들이 있다.
재잘재잘 담소나누면서 걸어가는 저 사람들의 여유로움에 산이주는 넉넉한 인심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누군가 이런 말을 한것이 갑자기 기억난다. 빨리가려면 혼자인 것이 좋고 오래가려면 동무가 있는 것이 좋다는 말 우리 삶도 빨리가기 위하여 혼자가는 삶보다는 여럿이 동무가 되어 오래오래 천천히 가는 그런 길이 좋은 것이 아닐까
서리가 내리며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바람결에 우두둑 우두둑 하고 소리내어 흘러내리니 얼마지 않아 이 가을의 끝이 오고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이 있겠구나 싶은것이 조금은 아쉬운 마음과 서글픔이 물든다. 저 오색 찬연한 단풍이 물들듯이 어느새 정상 8부능선에서 바라보는 닭봉 희아산 삼산 비래봉의 멋진 모습을 조망하고 다시 오르다 지리능선의 아름다움과 산야들의 가을 햇살을 감상하고 다시 오르니 봉두산 정상이다.
봉두산은 원래 동리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이곳 봉두산의 형세가 봉황의 날개짓 형상이며, 봉황은 이른샐벽 오동나무 이슬만 먹고 자란다고 하며, 그 연유에서 유래된 것이 맞는 지는 몰라도 이곳 주변의 이름들이 봉 자가 들어간 이름들이 많다. 즉 이곳 봉두산이 봉황의 머리에 해당한다는 것에서 봉두산이 되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봉두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주변에 잡목 정리를 하여 좀더 좋은 조망권을 확보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을 한다. 그 산길에 무심으로 걷는 것이 내 삶에 많은 활력이 되겠지만 어디 무심으로 걸어지는 것이 아닌 삶이니 그 무심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새삼 느껴진다.
어느새 태안사 마당에 서 있는 자신을 보며 태안사의 모습을 이곳저곳 둘러보고 아침 나절에 걸어올랐던 그 길을 다시 걸어 내려간다. 오후 햇살이 유난히 반짝이며 단풍들의 멋스러움을 한층 더 빛나게 하는날 오후를 말이다.
가만 생각하니 가수 이용씨의 10월의 마지막 날을 조용하게 혼자서 사색하는 마음으로 11월의 마음을 다잡으며 산속에 내 마음을 맞긴 것 같아 기분좋은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다. 주차장에서 우리 근대사의 민족시인 조태일 시 문학관을 둘러보고 천천지 집으로 향한다.
섬진강변에는 겨울을 준비하는 철새들의 분주함과 가을의 정취를 더해주는 억새들의 춤사위가 어울어져 더욱더 깊어가는 가을의 맛을 즐기려 한다.
주차장에 정차하고
천천히 걸어올라가는 추억을 생각케 하는 비포장 한적한 도로의 풍경
너의 가을에
너의 멋으로
너의 색깔로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네
내가 너에게 무엇을 말하리
너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리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게 될것을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능파각
이 건물은 신라 문성왕 12년에 혜철선사가 태안사를 창건할 때 지었고 고려 태조 24년 광자선사가 고쳐지었다.
그 뒤 파손되었던 것을 조선 영조 43년에 복원하였다.
이 건물의 이름은 계곡의 물과 주변 경관이 아름답기 때문에 능파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건물의 특이한 점은 다리와 금강문 누각을 함께 겸비한 것으로 이 다리를 건너면서 세속의 번뇌를 던져버리고
불교의 세계로 들어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다 가다
쉬어지면 그것이
내 시간이고
내 아름다움이니라
성기암
그 이름 그대로 뭐 느껴지는 것이 있지요
누군간의 수고로움으로
많은 이들은 편안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8부능선에서 바라본 산야
저 멀리 닭봉 희아산 삼산 비래봉의 능선이 조망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월등면 노고치 넘어 백운산의 멋진 산야도 조망됩니다
봉두산 정상의 표지석
봉두산에서 바라본 산야의 아름다움과 하늘의 조화
가을의 끝이 어디일까요
내가 가진 이 솜털을 하나 하나
바람결에 날리면 겨울이 올까요
햇살에 비친 가을날의 멋진 모습
태안사
동리산 태안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 말사로 신라 경덕왕때 창건되었다.
이곳은 혜철선사 도선국사 광자대사 등이 득도한 선도량의 요람지이며 구산선문의 정통을 이어온 수행도량이기에 견성성불을 이루고자 하는 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곳곳에는 수많은 역사의 흔적이 배어있다.
적인선사 부도 광자대사 부도 광자대사비 대 바라 동종 등의 보물이 있으며, 화려한 색채의 목어 탑과 연못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능파각 불탑지 봉황문 대웅전 천불전 선원 등 불국정토를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동리산의 훈풍과 함께 경내에 가득하다
대웅전 처마에 달려있는 풍경
이 깊어가는 가을바람에
소리내는 풍경이 내 마음에 여운 한자락 남겨 놓네요
이놈의 사마귀는 왜 아직도 있을까
이제 들어갈 계절이 지난 것 같은데
보물들이 즐비한 부도
태안사 일주문
이곳의 현판에
동리산 태안사라 되어있군요
이 탑돌이를 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더이다
조태일
고 조태일 시인은 1941년생으로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태안사에서 보냈으며, 1962년 다시포도에서 로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아침선박 이 당선되었다.
또한 시 월간지인 시인 지를 창간하였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전신인 자유실천 문인협회 의 창립자로 이후에 민족 문학 작가회 초대 상임이사와 부 이사장을 역임하고 광주대학교 초대 예술대학장을 지냈다.
풀씨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히리
햇볕 하염없이 뛰노는 언덕배기면 어떻고
소나기 쏜살같이 꽃히는 시냇가면 어떠리
온갖 짐승 제멋에 뛰노는 산속이면 어떻고
노오란 미꾸라지 꾸물대는 진흙 밭이면
어떠리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 출 곳 없어 언제까지 나 떠 다니는 길목
그곳이면 어떠리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히리
섬진강변에서 가을날을 즐기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