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14 - 06 - 29 07:25 - 16:57
날 씨 : 흐리고 소나기
누 구 랑 : 나 홀 로
장 소 : 섬진4지맥 전북 순창 쌍치면 덕치면 일원
코 스 : 밤재 - 용추봉(07:36) - 밤재(08:12) - 세자봉(08:40) - 여분산갈림길(09:09) - 여분산(09:26) 휴식- 663봉(10:29)우틀 - 신광사재(10:43) - 나이봉(10:51)우틀 - 임도 휴식(11:02) - 조망바위(11:48) - 사실재(임도위) 12:01 휴식 - 752봉(12:55) - 장군봉(13:21)휴식겸 점심 - 회문산 임도(14:01) - 장군봉갈림길(14:22) - 삼연봉(14:50) - 천마종(15:23) - 깃대봉(15:34) 휴식 - 삼거리(16:09) - 덕치치안센타(16:44) - 물우리(16:57) 약23.5킬로
그동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걱정스럽고 고민되는 시간이 약3개월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50평생을 살아오면서도 나에게 그런 병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차라리 모를때가 좋았는데 알고나니 그것이 병이 된다는 말 이번에 제대로 실감을 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모 병원에서는 수술만이 살길이라고 했는데 서울 모 병원에서는 시술로도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얼마나 안심이던지 모름지기 그래서 사람들은 병들면 돈이 들어도 큰 병원을 찾는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아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을 했으니말이다.
다행이 시술은 잘 끝나 4일간의 입원을 끝내고 주말에 퇴원을 했다.
토요일은 그동안 밀린 일을 대충 마무리 하고 일요일은 내 몸을 시험도 할겸 어디 산행을 가볼까 생각하다 당일에 끝낼수 있는 섬진4지맥(회문지맥)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언젠가 혼자서 이 코스를 산행하다가 길을 잃어 중도에 그만둔 적이 있어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하리라는 생각에 결행을 결심했다.
이른아침 상쾌하게 새벽공기를 가르며 담양을 거쳐 쌍치에서 밤재를 올라 도착한다. 날씨는 잔뜩 흐리고 바람은 고개를 타고 넘는다. 준비하여 용추봉을 오르는 길이 없어 이리저리 헤메이다 대충 치고 오르니 능선에 희미하게 길이 있다.
용추봉에서 간단하게 막걸리 한잔에다 떡으로 오늘 산행의 무사함을 기도 드리고 아침겸해서 떡과 막걸리로 배를 채운다
다시 밤재를 내려와 산딸기를 실컷 따먹고 느긋하게 출발한다
지금쯤 지천에 피어나는 닭의 장풀
세자봉
여분산 갈림길
여분산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분산 정상은 그모습 그대로인 것 같구나
그때는 5월쯤이었으리라 산오디가 주렁주렁 익어 시큼한 맛을 느끼며 따먹었던 생각이 스친다.
나리꽃도 이쁘게 나를 반겨주누나
범꼬리풀
노루오줌풀
바위 채송화가
멋진 참나무 화분에 앉아 있네요
663봉쯤되나 여기서 우틀
가야할 회문산
앞에 보이는 곳에서 우틀하여 급하게 내려섭니다
비비추가 피어나는 걸 보니 여름이 왔나 봅니다
이곳 임도에서 시원한 바람에 나홀로 아무 생각없는 무심으로 한줄기 바람에 내 온몸을 맡기며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는 그 맛과 그 멋을 누가 알런고
이곳에서 앞에 보이는 곳으로 치고 오르면 봉우리 하나를 넘어 사실재가 나옵니다
사진이 흔들렸네
살짝 비가 흩날리고 있습니다
우산나물 꽃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풍경
가야할 장군봉
멋진 참나무 숲이 아주 정겹습니다
이곳이 사실재인듯 싶습니다.
임도와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하고 장군봉에서 점심을 먹으리라 생각하고 가파른 능선길을 치고 오릅니다.
처음에는 쉽게 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힘들게 밀어올리는데 내 키를 훌쩍 넘는 산죽들과 여름철이라 우거진 산길이 길이 거의 보이지 않아 내 하체와 상체가 따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선바위
비록 내 몸은 힘들어도 저 풍경은 내 한몸 힘든 것 보상하고도 남는구나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정말 이곳에서 부터 752봉 치고 오르는 길은 여름날에는 갈수가 없는 그런 길이다.
우거진 잡풀과 가시덩굴이 내 몸을 잡고 놓지 않고 어떻게 비집고 나가면 또 잡아채는 놈들로 빠져나가는데만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나니 이젠 굵은 소나기가 내 온몸을 두드린다.
소나기가 많이 쏫아져 잠시 한컷만 하고 만다. 이곳이 752봉 이곳에서 바라본 장군봉
정말 산죽 군락이 내 몸을 이완시키며 오늘 산행에서 제일 힘든 산행이다
더디어 장군봉에 올라선다.
장군봉은 지맥길에서 우측으로 잠시 오르면 된다.
이곳에서 점심겸 마지막 막걸리를 시원하게 비운다.
줌으로 당겨본 추월산
언제 쏫아낼지 모르는 먹구름과 산야
가막골 용추봉과 이곳 회문산은 빨치산의 전북도당이 있던 곳으로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빠질수 없는 질곡의 아픔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노령산맥이 그 마지막을 용추봉에서 막을 내린다면 그곳에서 빨치산의 근거지가 있던 곳이며 오늘 걸어온 이 길로 빨치산들이 많이도 걸었던 길이기도 할 것이다.
이곳 회문산이 전북도당의 근거지이니 말이다.
그 이념의 소용돌이에서 우리의 근대사는 얼마나 많은 아픔을 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지 언제쯤 그 끝이 보일런지 아무도 모른다.
역사는 말없이 우리에게 참 많은 교훈을 던져주고 또 물음을 던져주지만 그 해답은 아무도 찾지 못하고 아직도 분단의 현실속에서 동족의 애환을 끝낼것을 애타게 기다리며 오늘을 살고있다.
장군봉에서 바라보는 저 수많은 산야들의 아름다움이 진저리치도록 아픈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린 기억하고 있어야 할것만 같다.
회문산 임도와 봉우리
산수국 꽃잎이 있는 꼿은 헛꽃이며 가운데 있는 꽃이 진짜랍니다.
헛꽃은 나비와 벌을 유혹하는 꽃이라네요
회문산 임도
ㅓ더디어 회문산 갈림길에 당도한다.
나는 2주전에도 왔다가 간 회문봉이라 그냥 삼연봉을 향하여 내달린다
깃대봉
깃대봉의 유래
1569(선조 2)∼1647(인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운학(雲壑). 경남 함안출생.
1609년(광해군 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의 실정으로 벼슬을 단념하고 성리학과 예학(禮學)에 주력하였고
도학과 문장이 당세에 뛰어났다.
학문과 창의에 빛난 조평(趙平)선생이 죽자 생전에 이룩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천만평의 사패지(賜牌地)를
하사하였고, 사패지에 깃대를 꼽도록 하였다. 지금도 회문산 북동능 끝봉에 “조평선생사패지(趙平先生賜牌地)”라는
깃대를 꼽아 놓고, 이름을 “깃대봉”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회문산 남쪽의 땅을 빼앗겨서 현재는 국유지가 되었다. 깃대봉 아래 북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덕치면 회문리(回文里)는 380여년 전 함안조씨인 조평선생이 임진란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정착한후 부락이 형성되었고, 이조말엽까지 지명을 고덕치(高德峙)라 했으나, 일제때 형정구역이 개편됨에 따라 회문봉에 천연적으로 생긴
돌문(回門)을 본따 회문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구림면 안정리의 회문산 중턱에 있는 만일사(萬日寺)의 유허비에 의하면 고려말에 이태조의 등극을 기원하기 위해
무학대사가 만일(萬日)동안을 기도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약간 검붉은 색깔에 반작거리는 윤기속에 감미롭고 특이한 맛이 혀를 감칠 맛나게 하는 순창고추장이 세상에
알려진 동기는 고려말 무학대사가 이태조의 등극을 위해 만일사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이태조가 무학대사를 찾아오다가 어느 농가에서 고추장을 먹어보고, 그 맛을 잊지 못해 등극 후 순창현감에게 고추장을 진상토록 해서 그 후로 부터 유명해 졌다. 순창자수가 명성을 떨치게 된 동기는 조선조 중엽 순창현감이 임금을 알현할 때 관복에 수놓은 자수 쏨씨에
임금이 감탄하자 그후로부터 진상품이 되면서 유명해졌다.
사초와 산길풍경
오늘 산행은 내 자신의 몸을 체크해보는 시간이기도 하였지만 결코 쉽지 않은 여름산행의 시간이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오늘 여기 물우리에 용추봉에서 걸어온 모든 여정을 여기 섬진강 물우리에 띄워 보내며 오늘 걸어온 길은 추억으로 넘기고 또다른 섬진지맥을 찾아 다음을 기약하리라
회 문 지 맥
가막골의 깊은 골짜기를 형성하는 용추봉에서
그 첫걸음을 내딧는다.
가는 산길에는 야생화와 산새들의 노랫소리
한줄기 불어주는 바람
그 모든것이 내 친구가 되어준다.
지맥에서 비껴앉은 여분산에서
산세의 아름다움은 볼수없구나
혼자서 간다는 것은 고행의 길인가
행복의 길인가?
이데올로기가 뭔지도 모른체
오직 삶의 영위를 위해 좌.우가 되었던 시간
그때에 삶의 흔적을 따라 가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힘들게 밀어올리면 반드시 일망무제의 환희가 주는 세계
그것이 신기루이다
우린 살아가면서 너무나 크고 많은 것을 요구한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욕심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노력한 댓가는 분명 있었다.
내가 만족하지 못할뿐이지
그 많고 많은 애환과 후회의 시간을
말없이 흐르는 저 섬진강에
풀피리 불며 띄워 보내리
이젠 조금만 희망일지라도
결코 실망하지 않고
작은 미소지을 수 있는 시간속에..
2014.06.29
대 방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