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15 - 06 - 27
장 소 : 전라북도 남원 산내면과 경남함양 마천면 경계
날 씨 : 흐리고 비
누 구 랑 : 반쪽과 대방산
코 스 : 마천면 - 음정마을 - 바리케이트(마천에서 이곳까지 택시이동) - 13-5 이정표 조금 위 산길 - 도솔암 -
영원사 - 삼정산 - 상무주암 - 문수사 - 삼불사 - 약수암 - 실상사 (약16KM)
얼마만에 지리산 칠암자를 찾아 나서는지 그 기억도 가물가물이다.
음정가는 첫차를 타기 위하여 집에서 서둘러보지만 사람살아가는 것이 그리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것이지 않나, 더욱이 둘이서 준비하니 더 그럴 것이다.
집에서 07:10분경 나서 약 1시간을 달려 실상사 입구에서 물으니 잘 모른다. 다시 마천으로 가서 물어보니 음정 올라가는 첫차 08:20분은 이미 출발했고 10:00경 차가 있단다. 음정까지는 하루에 6차례 운행이 되고 있단다.
할 수 없이 택시(12,000) 주고 바리케이트까지 올라가서 산행을 시작한다.
피나물이던가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는 소식이 없었는데 날씨를 보니 그래도 불안불안이다. 금새 어두워졌다 밝이졌다 반복하기를 수차례
그래도 우린 허이허이 급할 것 없이 군 작전도로를 따라 올라가며, 산딸기 따 먹으며 그렇게 산이주는 싱그러움을 만끽하면서 계속 임도 따라 오르다 표시기 13-05 조금 지나서 입산금지 구역으로 산길숨어들어 약 1킬로 이상 치고 오르는 것 같다.
습도가 높고 습기가 많은 날 산행하기가 제일 짜증스럽지만 그래도 어쩌랴 오늘 산행의 내 복인 것을
급하게 계속 밀어오리리다 어느 안부 능선에서 시원한 바람 한줄기에 흐르는 땀방울 식히고 다시 길을 나아가니 혼자서 오늘
칠암자길을 온 사람과 마주하여 도솔암에 들른다.
달맞이꽃
도솔암 가는 길
입산금지구역이라 조금은 그시기 합니다.
도솔암
도솔암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을 가르는 지리산 북부능선 혹은 삼정산 능선으로 불리는
이 능선 상에는 지리산 이십여개의 사찰 중 일곱개의 사찰과 암자가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어 칠사암 순례코스로
유명하다. 이들 중 실상사,약수암,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영원사는 누구나 쉽게 다녀올 수 있지만
해발 1,140m나 되는 깊은 산중 골짝에 묻혀있는 도솔암만은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호사가들의 의혹을 증폭시키는 도솔암이다. 투구를 쓴 장수가 다스리는 암자라는 뜻의 도솔암은
조선조 의병장 청매조사(1548~1623)께서 수십년간 용맹정진하던 곳이라는 영원사의 안내문 외에는
별로 알려진 바 없고 스님 한분이 정진중이어서 정적만이 감돌지만 최근 통행이
자유로워진 벽소령 작전도로를 이용하면 수월하게 다녀올 수 있다.
특히나 지리산 도솔암에 있는 삼소굴(三笑窟)은 석굴이 아닌 나무집으로 조선시대 청매조사가 수행하던
수행공간으로서 중국 여산 동림사의 삼소당을 뽄 딴 것이라 한다. 삼소당은 동진시대의 고승 혜원조사가 수행하여
머물던 곳으로 당대의 이름난 전원시인 도연명과 도사 육사정과 함께 3인이 절친한 교분을 나누며 담소를
즐기던 곳이다. 지금은 혜원조사를 봉안한 조사당으로 바뀌었다. 혜원조사는 오직 불도수행에만 전념하여 30년 동안
동림사 산문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산문 경계선이 바로 절 앞쪽을 흐르는 시내인 호계(虎溪)였다.
그런데 하루는 혜원을 비롯한 절친한 3인이 도담을 나누며 즐기다 육사정,도연명이 돌아가는 길을 혜원이 배웅하다
3인이 담소에 빠진 나머지 산문 밖을 절대로 나가지 않았던 혜원이 그만 경계선인 호계를 넘고 말았다.
이에 3인이 서로들 깔깔대고 웃었던 고사에서 호계삼소(虎溪三笑)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삼소굴도 이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혜원조사를 본 받아서 수행하겠다고 만든 수행처이다. 현대에도 조계종 종정을 지낸 혜암스님이 1982
(63세때) 이곳에 초암을 짖고 수도한 바 있으며 지금도 그의 제자 정진스님이 수도에 정진하고 있는 조용한 수도처이다.
도 솔 암
깊고 높은 산중에 암자하나
시시각각 바뀌는
저 창공의 안개구름이 친구가 되고
쉴새없이 지저귀는 산새들이
정적을 깨우고
채마밭의 상추가
인적을 느끼게 한다.
나무집의 삼소굴에 수도정진했던
청매조사는
저 더넓은 창공에 무엇을 채우려 했을까?
삼소굴 툇마루에 앉아서 바라보는 세상은
저 아래도
저 위도
그져 보이는 것은 수평선일 뿐
누가 누구를 탓하지 않은
평행선 위의 선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절대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각의 굴레속에 나를 찾는 것
진정 자유가 아닐까?
2015.06.27
대 방 산
삼소굴
둘이서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분이 드는 곳입니다
음정에서 영원사로 찻길로 올라오면 이곳이 도솔암에서 나오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오르면 다시 원점으로 회귀해야하는 곳입니다.
영원사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르는 곳
난 무엇을 깨달았을까?
혼자가 아닌 동행이 되어
찾은 영원사
오래도록 이 동행을 같이하고 싶다.
같은 곳을 향하여
같이 동행이 된다는 것은
삶이 행복이고
삶이 여유 있음이라....
2015.06.27
대 방 산
영원사(靈源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덕여왕(재위 647∼645) 때 영원(靈源)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창건자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으며, 2가지 창건 설화가 전한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영원이 범어사에서
수행하다가 욕심 많은 스승을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가 10년 후에 다시 돌아와 보니 스승은 흑구렁이로 변해 있었다.
영원은 불쌍한 스승의 영혼을 인도하여 지리산으로 돌아가다가 만난 한 부부에게 열 달 후 아들이 태어날 것이니
7세가 되거든 이곳으로 데려오라 고 하였다. 영원은 이후 절을 짓기 시작하여 7년 만에 완성하였고, 그곳으로
찾아온 동자를 제자로 삼았다. 그는 동자를 방 안에 가두고 문에 작은 구멍을 낸 후 그 구멍으로 황소가 들어올 때까지
열심히 수행하라고 하였다. 훗날 동자는 문구멍으로 황소가 뛰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영원이 이곳에서 8년간이나 수도하였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다른 곳으로 가려고 산을 내려가는데
한 노인이 물도 없는 산에서 낚시를 하면서 영원을 향하여 혼잣말로 8년간 낚시를 했는데 아직 고기를 낚지 못하였다.
그러나 2년만 있으면 큰 고기를 낚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영원이 이 말을 듣고 다시 2년간 더
수도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절을 지었는데, 그것이 영원사였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그 노인을 문수보살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수행 처로 이름나 고승 109명이 안거하였다고 한다.
이 사찰의 역대 조실들을 기록에는 영관, 휴정, 인오, 유정, 상언 등의 큰스님이 열거되어 있다고 한다. 절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며 1948년 여수, 순천사건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71년 중창되어 오늘에 이른다. 암자는
도솔암과 상무주암, 문수암 등이 남아 있다. 이중 도솔암은 인오가 수도하던 곳이고, 상무주암은 지눌과 혜심 등이
머무르던 암자라하고 오늘날 삼정산 칠암자 순례중 하나 이다.
자주달개비
이 싸립문은 나서면 이제부터 계속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약 2KM정도는 걸어 올라야하나 아무튼 오르막이 계속되고 어느 안부 능선에 서면 벽소령으로 가는 길이 있으나,
지금은 폐쇄된 상태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상무주암으로 가다보면 삼정산 오르는 길이 있으나 이것도 마찬가지로 입산금지 표시기만 붙어 있습니다.
꿀풀
노루오줌
도솔암에서부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왔다 가기를 반복하면서 벽소령 능선부터 서서히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제법 굵은 빗줄기로 변한다.
영원사를 지나고 삼정산 오를때까지도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비에 젖은 오리새끼마냥 그렇게 오롯이 둘이서 산길 오른다.
푸르른 날에 촉촉하게 적시는 비에 싱그럽게 인사하는 자연과 풀섶에서 재잘되는 새소리에 둘이서 간간이 내 뱉는 긴 호흡소리 그 모든 것이 어울어져 또하나의 자연을 만들고 있다.
상무주암 가다 삼정산으로 오르는 산길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삼정산을 오른다. 그 오르는 길에 조망바위는 온통 회색 세상으로 모든것을 감추고 한줄기 바람만이 휘--잉 지나가고 다시 삼정산 정상에서 인증샷 한컷 남기고 허기진 배를 채운다.
느긋하게 막걸리 한잔 산신령에게 안부고하고 마시니 정말 맛나다.
기린초
상무주암 (上無住庵)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上)이고, 머무름이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다.
지리산 영원사의 末寺(말사)로써 삼정산 아래 위치한 상무주암(上無住庵)은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하고
큰 깨침을 얻은 곳이며 고려때 지눌선사가 2년여 머물렀다는 곳이다. 상무주암 밑으로 밭이랑 연못이 인상적이다.
지리산 삼정산 정상아래 바짝 붙여있는 상무주암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한다.
상무주암은 언제나 그렇하듯 일반인은 출입금지란다.
안을 들여다 보니 툇마루에서 스님은 벽소령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는지 오침을 주무시는지 미동도 없고
처사님은 우리가 겨면쩍은지 잠시 화장실 갔다 급히 싸립문 넘어서고
보살님 두분은 부억에서 손길이 바쁘다.
상무주암(上無住庵)
모든것은 머무름이 없어야 된다
산도
자연도
구름도
인간도
그져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한세상
가다보면 나도
저 구름처럼 헐헐
바람따라 이리저리 흘러갈 수 있으려나.
2015.06.27
대 방 산
양지꽃
길손의 목마름을 채워줄 것인가?
문수암(文殊庵)
문수암은 발을 딛는 순간 하늘정원에 온 느낌을 받는다. 구름위에 서서 떠 있는 듯하다. 그 만큼 황홀감이 느껴진다.
들리는바에 의하면 도봉스님이 32년 동안 수행을 하면서 지키고 있는 암자라고 한다.
석축위에 아슬아슬하게 다듬어서 만들어낸 기교한 선채는 가히 쉴만한 곳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문수암 옆쪽으로는
천인굴이라는 석굴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마을사람들이 천명이 피난하였다고 해서 전해지는 천인굴(千人窟)이라고도
하고 천용굴 이라고도 하나 전설과 생성유래는 소문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도봉스님은 이 석굴이
천인용굴(千人用窟)이라 하여 천년동안(즉,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 굴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석간수를 받아서 식수로 사용하는 샘터도 있다.
문수암
문수암에 서면
언제나 마음이 탁 터인다.
거칠것 없는 더 넓은 창공에
지리의 천왕봉도
산청의 필봉도
덕유산도
그 아름다움 내어주니
더없이 좋다.
도봉 스님은 이곳에서
강산이 세번 바뀌었는데
얼마나 좋았을까?
내 가진것 없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자연에 취해
마음만은 부자가 된다.
2015.06.27
대 방 산
천인굴
산그리뫼 그리움을 전하고 있다.
.삼불사(三佛寺)
조선시대에 세워진 산중 절이다. 그런데 이 곳은 비구승들이 참선하는 도랑으로 여염집 아낙네들이 사용하는
산중 별장같은 느낌이지 절이라고는 조금은 아쉬운점이 많다. 그러나 삼정산 정기가 흘러내려 삼불사를
애워싸고 있는 기가 충만한 것 같다. 여기와 실상사에는 산심각에 칠성을 모시고 있다
삼불사
어느 여승의
간절함이 이곳 삼불사를 일으켰을까
간절함이 있을때
희망이 보이고
그 희망으로
내일을 견뎌낼 것이다.
삼정산
삼불사의
긴긴 겨울밤
참선으로
봄이 오는 춘삼월을 기다리듯이
2015.06.27
대 방 산
그렇게 지리산의 능선길을 돌고 돌아 오는 여정이 지나온 우리 삶의 여정과 흡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속을 불안하게 달려가다 보면 어느새 희망의 보금자리가 보이고 또다른 세계로 시선을 돌려
끊임없이 달려왔고 달려가야 되듯이 지리산 칠암자 길도 그렇게 돌고돌아 가다보면 어느새 암자 하나가 무거운 발걸음을 쉬어가라는듯 그렇게 나타니니 말이다.
내 무거운 생각 하나를 이곳에 벗어버리고 가다보면 어느새 실상사를 지날때는 가벼운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산길걸어오는 내내 비가 우리를 따라 오듯 계속해서 오는 지라 약수암은 그냥 사진만 찍고 세세한 관찰은 다음으로 미루고 차량이 다니는 길로 내려서는 것이 더 좋을것 같아 내려오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산길로 내려올것인데 하고 후회도 해본다.
실상사에서도 예전에 여러본 와 보았던 터라 천왕문에서 대웅전을 보고 사진한장으로 오늘 칠암자의 마지막 실상사를 대신하고 서둘러 해탈교를 건넌다.
이것으로 지리산 칠암자길을 둘이서 오붓하게 서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듯이 그렇게 천천히 둘만의 시간으로 반가운 장마비와 동행이 되어 칠암자를 걸었다.
언제 다시 걸어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겨두어야겠다.
. 약수암(藥水庵)
지리산정기를 삼정산으로 보내 남은 여기를 약수암으로 해서 실상사에 머물게 했다.
경내에 맑고 청아한 약수가 유명하다고 해서 약수암이라고한다. 남원 산내면 입석리 삼정산중턱 약1km 지점에
위치하며. 자동차로도 오를 수 있는 곳이다. 1937년 불자의 시주금으로 중건되었다고 하며,
보물 제 421호인 실상사약수암목조탱화가 보존되어 있다.
.실상사(實相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창건은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데서 비롯된다. 선종(禪宗)이 처음 전래된
것은 신라 제36대 혜공왕(惠恭王) 때인데, 발전을 못하다가 도의(道義:道儀)와 함께 입당(入唐), 수학하고
귀국한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이 흥덕왕의 초청으로 법을 강론함으로써 구산선문 중 으뜸 사찰로 발전하였다.
도의는 장흥(長興) 가지산(迦智山)에 들어가 보림사(寶林寺)를 세웠고, 홍척은 이곳에 실상사를 세워 많은 제자를
배출, 전국에 포교하였는데 이들을 실상사파(實相寺派)라 불렀다.
그의 제자로 수철(秀澈) ·편운(片雲) 두 대사가 나와 더욱 이 종산(宗山)을 크게 번창시켰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어 약 200년 동안 승려들은 부속암자인 백장암(百丈庵)에서 기거하다가,
조선 제19대 숙종대에 이르러 300여 명의 수도승들이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1700년(숙종 26)에 36동의
건물을세웠다. 그러나 1882년(고종 19) 사찰 건물이 소실되는 수난을 겪고,
다시 여러 승려들의 힘으로 중건되어 현재에 이른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석탑, 보물 제33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秀澈和尙楞伽寶月塔),
보물 제34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 보물 제36호인 부도(浮屠), 보물 제37호인 3층석탑 2기(基), 보물 제38호인
증각대사응료탑(凝寥塔), 보물 제39호인 증각대사응료탑비, 보물 제40호인 백장암 석등, 보물 제41호인
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 보물 제420호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靑銅銀入絲香爐),
보물 제421호인 약수암목조탱화(藥水庵木彫幀畵)가 있다.
실상사를 빠져나와 마천면으로 이동하여
잠시 필요한 것을 마트에서 구입하여 바로 오도재를 오른다.
오도재 정자에서 집한채 짓고
안개로 둘러쌓이는 오도재의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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